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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바라던 곳은

 

[01. 개막]

분장실에서 나서자마자, 모두가 사라졌다. 이규혁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다시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분명 다가오는 그것의 손을 마주한 후, 기절한 도윤이를 혜성이와 함께 소파 위로 들어 올렸었다. 그 후, 깨어난 도윤이와 함께 몇 마디를 나눈 후 밖으로 나가야겠다는 충동에 휩싸여, 분장실 문을 연 것은 기억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문을 열고 나온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처음부터 원래 혼자였다는 듯, 익숙했던 사람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철저히 홀로 남겨진 것이다.

 

‘…아냐, 또 혼자 남겨졌을 리 없어. 분명히 누군가가 남아있을 거야.’
“도윤아! 혜성아! 누나! 인하야! 세일아! 다들 내 목소리 들리면 대답해!”

 

이규혁은 홀로 남겨진 어린아이처럼 절박하게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다. 제발, 제발, 제발, 혼자 남겨지는 건 이제 그만하고 싶어. 누군가가 나를 찾아줬으면 좋겠어. 날 잊지 말아줘. 제발____

 


올라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무대까지 달려갔다. 분명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붕괴 사고가 일어나 정신이 전혀 없었나 보니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어쩌면 애초부터 모두 무대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홀로 분장실로 이동한 걸 수도 있다. 자신은 그런 사람이니까. 언제나 실수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니까. 이규혁은 자기혐오가 가득 섞인 말을 중얼거리며 비상구 문을 열었다. 눈 앞에 무대가 보였다. 밝고, 생기 넘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며 선생님을 애타게 찾았던 바로 그 무대가. 


하지만 무대는 자신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02. 헌신]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이, 자신에게서 등을 보인 채 스태프 석에서 멍하니 무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규혁은 그 익숙한 뒷모습이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낯설었다. 보면 안 될 것을 본 느낌이었다. 마치 사냥 당해 죽어가고 있는 야생동물의 파헤쳐진 살을 전부 적나라하게 보는 것과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이규혁은 그 사람에게 여기 있었냐며 아는 체를 하는 대신에, 혐오스러운 것을 피하는 사람처럼 '그것에게서 두 발자국 물러났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챈 모습인지, '그것' 이 자신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안돼. 등을 돌리지 마.
그 사람의 얼굴을 한 채로 나를 쳐다보지 마. 제발.

 

 


"형, 드디어 나를 찾은 거야?"

 

''그것'이, 아니, 도윤이가 이규혁을 보며 말을 걸었다. 그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붕괴사고로 무너져 내렸던 조명은 어째서인지 환하게 도윤이를 비추고 있었다. 마치 고통받는 인간을 위해 직접 내리러 온 신의 사자와도 같은 그 성스러운 모습에, 이규혁은 넋을 잃고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한도윤은 빙그레 웃으며,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의 손을 붙잡았다. 분명히 "'그것"의 손이니까 차갑고, 축축하며, 피비린내가 진동해야 할 손인데, 어째서인지 도윤이의 껍질을 뒤집어쓴 손은 놀랍도록 따스했으며, 늘 그 아이에게서 나던 베이스 줄의 쇠 냄새와 불에 태운 커피콩 향이 났다.

 

"형,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야? 내가 형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형이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찾는다고 내가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알아?"

 

내가 좋아하는 장소? 이규혁은 당황해서 제 생각이 입 밖으로 나온 지도 모른 채 되물었다.

 

"그래, 형이 제일 좋아하는 곳! 내가 다시 이곳을 그 모습 그대로 살려놨어. 어때? 마음에 들어?"

이규혁은 고개를 들어 무대를 바라보았다. 망가지고 구부러졌던 무대는 어느새, 붕괴사고가 있기 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자신을 맞이하고 있었다. 타오르는 듯한 조명도, 선생님을 사랑하던 팬들이 앉아있던 넓은 관객석도, 선생님의 노래로 가득했던 음향기기도 모두 그대로였다. 그는 이 모든 광경에 이질감을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분명, 무대 붕괴사고가 있었고, 무대는 건물 외벽을 감싸듯 무너져 내렸다. 심지어, 스태프 석에는 분명, 다시는 고칠 수 없는 것이 존재했을 것이다. 이제 와서 이 모든 걸 도윤이 혼자서 고칠 리가___

"참, 신 PD님이 도와주셨어. 어때? 마음에 들어?"

 

 

[03. 다가오는]

이규혁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방금 들어서는 안 되는 단어가, 분명히 들렸다. 누가, 나를 도와줬다고? 신승연 PD님이? 그럴 리가 없다. 이 무너진 무대가 고쳐지는 건 가능할지 몰라도 PD님이 도윤이를 도와주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녀는...

 

“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서 그래?
형 눈으로 신 PD님이 죽는 걸 직접 봤으니까?"

 


도윤이가 따스한 봄바람처럼 온화하게 웃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이규혁은 절망에 빠진 짐승과 같은 눈을 한 채 한도윤을 쳐다보았다. 들켰다. 들켰다. 절대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제일 들키고 싶지 않았던 사람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긴장한 채로 계속 짓씹고 있었던 입술에서 비릿한 쇠 맛이 올라왔다. 어떻게든 목소리를 가다듬으려고 노력했지만,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건 쉭쉭 거리는 바람 빠지는 소리뿐이었다.

 

"도, 도윤이 네가...어, 째서, 그걸..."

 

 패닉에 빠진 채 덜덜 떨고 있는 이규혁을 바라보며, 한도윤은 마치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해답을 알려주는 듯한 친절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곤 자신의 가슴팍에 손을 얹은 채, 마치 ‘물은 투명하다’ 따위의 간단하고도 당연한 원리를 설명하는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형. 나는 한도윤이 아니야. 형도 알고 있잖아.
내가 그것이라는 걸. 그 손을 봤을 때부터 눈치챘잖아. 벗어날 길은 없다는 걸.
형도 부러워했잖아. 사라진 사람들이 되고 싶었잖아. "

 

목소리는 도윤이의 것이 분명했지만, 귓속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제 목을 세게 감싸 쥐는 듯한 느낌이 들어, 이규혁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푸른 넥타이를 한 손으로 어루만졌다. 그 모습을 본 한도윤은 더욱 크게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몸을 반쯤 웅크린 채 덜덜 떨고 있는 이규혁에게 다가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가련한 어린 양에게 다가오는 자비로운 신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난 이렇게 형 앞에 서 있어.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있어 주기를 형이 간절히 원했으니까. 그리고 형이 간절히 욕망했던 그 누군가는 바로 나고. 내 말이 틀려, 형?”

 

이규혁은 말 없이 한도윤의 껍질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마음을 칼로 도려낸 후 들여다본 사람처럼 말하는 도윤이의 모습은 지독히도 낯설었다. 하지만, 동시에.

 

 

[04. 환희]

미칠 듯이 황홀한 감정이 밑에서부터 서서히 올라왔다.

드디어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봐 줬다는 생각에, 이규혁의 뇌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가 사랑하던 이병희의 껍질을 벗겨내 지독히도 혐오스러운 자신을 기꺼이 마주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이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인가? 그는 자신이 반쯤 웃고 있다는 것도 잊은 채, 홀린 듯이 도윤이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울고 있는 이규혁의 눈가를, 그는 조용히 자신의 손으로 훔쳤다. 그리곤 몸을 굽혀 이규혁에게 시선을 맞추었다. 마치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듯한 성숙하고도 다정한 행동이었다. 이규혁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손에 체중을 실어 몸을 기댔다. 자신의 볼에 느껴지는 따스한 온기에, 그는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래, 이건 도윤이 너의 온기구나.

 

“기분 좋은 거, 당연한 거야, 형.
내가 형을 알아봐줬잖아. 이병희의 아들이 아닌 이규혁으로. 형은 그런 나에게서 위안을 얻은 거고.”

 

반박할 수 있는 문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뇌를 전부 보고 있는 듯한 도윤이의 눈빛에, 이규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도윤아. 나는 네가 필요해. 도윤이 너도 날 필요로 하고. 이보다 더한 행복이 있을까? 이규혁은 생각했다.

 


“그분이 형을 데려오라고 했어. 이제 하나가 될 시간이라고. 형도, 나도 함께. 우린 이제 정말 형제와도 다름없는 사이가 되는 거야. 배신자를 필요로하는 위선자. 잘 어울리지 않아? 나도 형을 필요로 하고, 형도 내가 필요한 걸. 이제 정말.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거야.”

 

한도윤이 이규혁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규혁은 마침내,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05. 이상향]

도윤이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그것은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살짝 웃은 후, 조용히 그의 등 뒤로 다가간 후, 손을 들어 이규혁의 눈을 가려주었다. 익숙했던 어둠은 곧 그에게 편안한 안락을 선사해 주었다. 이제 모든 걸 도윤이에게 맡길 수 있었다.

 

" 내가 이제 형을 이끌어줄게. 내가 지시하는 대로, 잘 따라와야 해."

 

이규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와 함께 하는 곳이라면, 분명 그곳이 지옥 일지더라도 천국처럼 느껴질 것이다. 한도윤은 그런 이규혁의 마음을 눈치챈 듯, 작게 웃었다. 그리곤 그의 귓가에 '앞으로 세 걸음, 잘했어. 이제 오른쪽으로 다섯 걸음' 따위의 지시를 내렸다. 이규혁은 헤매지도, 넘어지지도 않은 채 도윤이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곧, 발끝에서 딱딱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스테이지로 올라가는 계단임을 눈치챘다.

그것은, 조용히 이규혁을 칭찬한 뒤 그의 눈을 가렸던 두 손을 풀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스테이지 위로 올라가, 이규혁을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조명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도윤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규혁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도윤이 그에게 내민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의 손을 잡고 한 걸음, 두 걸음씩 무대로 오르는 계단을 밟았다

곧이어 무대를 가렸던 커튼이 모두 걷어졌다. 찬란하고 눈 부신 빛이 그들을 비추었다. 텅 비었던 관객석에는 어느새 자신을 향해 소리치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은 분명, 드디어 이루어진 이규혁의 오랜 꿈을 축복하기 위해 모인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더 큰 환호성이 무대를 가득 메웠다. 이어서, 우레와도 같은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분명 뒤틀린 철재와 가분 나쁜 소음으로 가득했던 무대가, 이제는 환호성과 박수, 그리고 밝은 불빛으로 가득했다. 관객석에 있는 그들 모두가, 이병희가 아닌 이규혁,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듯했다. 이규혁은 이 모든 광경을 눈물에 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순간이었다. 단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한도윤이 뒤에서 조용히 말했다.

 

“어때, 형. 바라던 곳에 도착한 기분은?”

 

[06. 안개 낀 소망]

이규혁은 눈을 떴다. 매캐한 가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팠다.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보기 위해 몸을 조금 들썩거리자, 누군가가 자신의 입과 코를 한 손으로 가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자신의 입과 코를 가리는 것조차 잊은 채, 필사적으로 자신의 소매와 오른손을 이용해 이규혁이 연기를 흡입하는 것을 막고 있었다. 미동도, 온기도 없는 채 그 자세 그대로인 것으로 보아, 자신을 구하려고 노력했던 이 사람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이규혁은 감기는 눈을 겨우 움직여 간신히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는, 무너지는 무대 밑에 서 있던 자신을 구한 한도윤이었다.

 

머릿속이 충격으로 새하얗게 변했다. 도윤이가, 나를 두 번이나 구하려고 했다. 이병희의 그림자나 다름없던 자신을 구하기 위해 두 번이나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생명에게 자신의 목숨을 두 번이나 바친 것이다.

 

" 도, 도윤, 아…. 도...."

 

이규혁은 떨리는 손으로 한도윤의 뒤통수에 손을 가져다 대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가스를 마신 그의 몸마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이 모든 진실이 지독히도 절망스러워,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귓가에 감미롭게 속삭였다.

 


이규혁은 한도윤에게 두 번이나 구해졌지만, 이번에는 살아남지 못하리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생명은 이제, 그 진실된 모습으로 돌아가리라.

 


따스한 그 말이 어쩐지 평온하여, 이규혁은 마지막으로 남은 이성과 힘을 이용해, 조용히 제 입을 가리고 있던 한도윤의 오른손을 잡아 내렸다. 그리고 살짝 힘을 줘, 그 손에 깍지를 끼었다.

 


부디, 이 끝이 우리가 바라는 평온하고도 아늑한 일상이기를.
이규혁 자신을 발견해준 단 한사람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기를.

 

그는, 조용히 몸에서 힘을 뺀 후,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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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빰 @dyubbambotw| 규혁도윤규혁

 

자살 암시. 사망, 가스 중독  등의 소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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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5 <Revenant> |  wix edited by @bs_extin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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