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솨아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우산으로 막아내며, 수창은 제 발밑에 놓인 반쯤 시든 국화꽃과 빗물에 우둘투둘해진 편지들을 바라본다. 퇴근할 무렵부터 옅은 빗줄기가 볼을 간질이더니, 곧지나 장대비로 바뀌었다. 얼마 안 있으면 눈이 올 계절을 앞두고 무슨 비가 이렇게 오나. 눈이 내리기 전 떠나보내는 가을에 대한 눈물인지, 그도 아니면 제 속을 대변하기라도 한 걸까.
후우우. 낮은 한숨과 함께 몇 번 눈을 깜박이던 수창이 쪼그려 앉는다. 우산대에서 떨어지는 빗줄기가 말라붙은 국화 꽃잎 사이로 스며든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방송국 정문 앞에 이들을 추모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자신이 본 기사에서는 위치만 간략하게 나와 있었을 뿐이기에, 이렇게까지 조촐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음이다. 수창이 손을 뻗어 액자 위로 흐르는 빗줄기를 닦아 낸다. 아주 잠시간 또렷하게 나타났던 얼굴은 금세 빗줄기에 가려 사라진다.
"하나 같이 다, 어리네……."
앳된 얼굴이 가득 담긴 액자를 보는 수창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분명 저보다도 더 나이가 든 이들도 있건만, 이제 와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찌 되었건 사진 속 이들 모두 젊은 나이에 떠나간 것은 맞지 않는가. 자꾸만 터지는 한숨을 주체하지 못한 수창의 턱이 잘게 떨린다. 크흠, 큼. 시선을 위로한 수창이 목을 가다듬는다. 눈앞에는 새까만 우산이 만들어낸 하늘이 가득하다. 다시 고개를 바로 한 수창이 한쪽 손목에 끼고 있던 쇼핑백 안을 뒤적거린다. 이윽고 쇼핑백 안에서 색색의 꽃을 꺼내 하나둘 액자 주위에 내려놓는다. 빨강, 노랑, 분홍……. 추모에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꽃들이었으나, 수창에게는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꽃집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이 이것들이었으니까.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들. 마치, 이들처럼. 그래서 수창은 부러 화려한 꽃을 가리키며 저마다 고운 리본을 부탁했다.
액자 속 얼굴을 훑던 수창의 시선이 한곳에 머무른다. 삐쭉 솟은 새까만 머리카락과 대비되는 흰 얼굴. 살짝 끌어 올려진 눈꼬리, 조금 더 밑에 얇은 펜으로 콕, 찍은 것 같은 작은 점. 심드렁한 표정의,
"……한도윤."
막 오디션이 시작됐을 무렵, 수창은 가사를 외울 정도로 도윤의 노래를 들었다. 동생과 달리 자신은 도윤에게 관심은 없었지만. 그럼 관심도 없는 가수의 노래를 왜 들었느냐고 하면, 수창도 할 말은 있었다.
「얘가 한도윤이야?」
「어. 완전 잘 부르지? 봐봐, 얼굴도 잘생겼어.」
그건 수연이 종일 틀어놓았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도윤의 얼굴만 잔뜩 보았던 터라─수연이가 집안 곳곳에 포스터를 붙여뒀다.─ 노래를 들었을 때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더란다. 도윤은 수창의 생각보다 목소리 톤이 낮았고, 뾰쪽한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그전까지는 동생이 왜 이렇게까지 목을 매나 싶었는데, 노래를 듣고 나니 조금은 납득이 되어버렸다. 그 뒤로 수창은 몇 번은 소파에 앉아 함께 프로그램을 시청하기도 하고, 수연이 부탁하기도 전에 문자 투표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소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그가 잘 되기를 했으면 하는, 딱 그 정도였다.
쪼그려 앉아있던 수창이 몸을 일으킨다. 솨아아. 여전히 내리는 비가 우산의 둥근 면을 따라 똑똑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다. 수창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 채 잠자코 액자 속 도윤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어디선가 도윤이 불렀던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있죠. 한도윤 씨.
"저는 음악적 재능이나 이런 건 잘 모르지만……, 당신이 노래를 잘한다는 건 압니다."
수창이 사진 속 도윤을 향해 말을 붙인다.
"그래서 응원, 했어요. 뭐 사실, 그래봤자 문자투표 가끔 보내고……, 이 정도였는데요. 잘됐으면 했습니다. 동생이 좋아하는 가수이기도 했고, 당신 노래가 좋기도 했고요."
액자 위를 타고 흐르는 빗방울을 눈에 담는 수창의 표정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후우. 우산 손잡이를 꼭 쥔 수창이 고개를 수그린다. 한도윤 씨. 실은.
"후회해요. 그날 당신한테 문자 안 보낸 거요. 동생 말마따나 그게 뭐 어렵다고, 이렇게 뻗댔는지……."
구두 위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이 번잡스럽다. 양복 재킷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에 몸이 달달 떨린다.
"이제 와 이런 말 하는 거 참 우습죠……. 후회가, 계속 들더라고요. 변명 같죠. 맞아요, 변명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요. 한도윤 씨."
수창은 허리를 굽히고, 저가 썼던 우산을 내려놓는다. 도윤의 얼굴을 수차게 때리던 빗방울은 이제 없다.
"고작 문자 몇 통 보내고, 남이 틀어주는 당신 노래만을 들은 것뿐인 이런 나도─"
이제 빗줄기가 수창의 머리를 적시고, 눈을 지나, 뺨을 타고 흐른다.
"당신이 살길 바랐습니다."
정말로……, 간절히 바랐어요. 솨와아.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에서 수창은 그렇게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
달칵.
"왔어? 오빠, 나랑 얘기 좀─"
현관문 손잡이에서 손을 떼기도 전에 들려온 목소리에 수창의 몸이 일순 굳는다. 현관 앞에서 수창을 기다렸던 수연도 말을 멈춘다. 삐걱거리며 고개를 들어 올린 수창이 두 눈을 깜박깜박 뜨고, 수연은 입을 벌린 채 어버버─ 한다. 그러다 빽,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미쳤나 봐! 왜 비를 맞고 다녀?"
아직도 멀뚱히 선 수창을 향해 수연이 잔소리를 쏟아붓는다. 휠체어에 앉은 탓에 혼자서는 더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수연은 어쩔줄 몰라하며 수창을 향해 손을 뻗는다.
"얼른 들어와, 얼른! 세상에, 비가 이렇게 오면 우산을 사야지! 왜 그걸 다 맞고 있어!"
수창은 눈 앞에 내밀어진 하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게다가 새까맣게 차려입고, 이게 무슨 청승이야. 추위도 많이 타서 초가을부터 두툼한 카디건 없으면 못사는 사람이, 대체 무슨 배짱인데. 다다다 쏟아지는 잔소리를 들으며 수창이 속으로 한숨을 삼킨다. 아침과 달리 정반대로 구는 것이, 아무래도 그 이후로 삼촌이 다녀가신 것 같은데. 애한테 쓸데없는 말 하신 건 아닌가 모르곘네. 머릿속에 드는 오만가지 걱정에 애꿎은 입술을 꾹꾹 깨물던 수창이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수연아."
수창은 말을 꺼내놓고도 한참 머뭇거린다. 평소와 달리 낮은 목소리로 물어오는 통에 수연은 입을 다문 채 참을성 있게 오빠의 다음 말이 떨어지기를 기다린다. 물론 비에 쫄딱 젖은 꼴이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만, 기다려야지. 오빠도 일주일 내내 나만 기다렸잖아. 곧지나 수창의 입에선 나온 말만 아니었더라면, 수연은 제 다짐을 깨지 않았을 테다.
"밥은 먹었어? 몸은 좀 어때?"
수연은 말이 없다. 곧 뒤이어 구겨지는 얼굴을 보며 수창의 눈이 화등잔만 해진다.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혹시 어디 아파?"
병원 갈까? 기다려봐. 얼른 가서 차 빼 올게. 호들갑을 떨며 제 앞에 쪼그려 앉은 수창을 바라보던 수연은, 멀쩡한 팔로 그의 어깨를 퍽, 퍽 내리친다.
"이 화상아! 너는 지금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가 궁금하니!"
"어? 어─?"
"일주일 내내, 애꿎은 오빠 탓만 해가면서 방에 처박혀 있었는데─! 서운하다, 화난다, 너는 애가 왜 그러냐, 이런 말도 아니고. 고작 내가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가 궁금해!"
이 모든 것들이 수창의 탓이 아니라는 것은 수연도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겼다. 원망할 사람이 필요했다. 기어코 제 부탁 하나 들어주지 않는 것에 대한 서러움도 있었겠다.
「수연아, 네가 뭘 하나 잊은 것 같아 하는 말인데.」
오후 늦게 들이닥친 삼촌이 저를 끄집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해서 제 오빠 탓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네 오빠는 너 없으면 못산다.」
지금도 보아라. 화를 내기는커녕, 얻어맞으면서도 제 팔다리에만 시선이 두지 않는가. 아, 정말이지. 퍽퍽 수창의 어깨를 때리던 수연의 손짓이 점차 느려진다. 완전히 멈춘 손은 수창의 어깨 위에 힘없이 올려진 채다.
"잘못한 건 난데, 왜 오빠가 내 눈치를 봐……."
제 오빠는 아주 오래전부터, 남들 눈에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저를 챙겼다.
"오빠가 무슨, 잘못을 해서, 내 눈치를 보고 그러냐고."
세상에 둘만 남아 살아온 것이 십수 년이었고, 저의 보호자이자 하나뿐인 오빠다. 반대로 저 역시, 오빠의 단 하나뿐인 동생이고 동시에 보호자다. 수연이 더듬더듬 손을 뻗어 수창의 손을 움켜쥔다. 비를 맞은 탓인지 손이 꽁꽁 얼어붙었다. 저가 문을 걸어 잠근 동안, 아마 죽을 맛이었을 테다. 방에 틀어박혀 수일을 내리 울던 저도 그러했는데, 오빠라고 다를 것이 있겠는가. 성정이 선한 사람이니 모든 것들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공연장에 간다는 저를 완곡하게 말리지 못한 것도, 이십여 분 남짓 되는 그 시간 동안 저를 기다리며 아무것도 할 수 없던 것도, 새벽녘 뜬 눈으로 제 곁을 지키면서도. 날이 밝은 뒤에, 소식을 접했을 때도. 그리고 지난 일주일 동안에도. 수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오빠, 내가 생각을 해봤거든……. 만약 그날 공연장에 갇힌 게 내가 아니고 오빠였다면, 그래서 오빠가 다쳐서 나왔다면."
아마 나도 같은 선택을 했겠지.
"나도 오빠랑 똑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서로가 둘 뿐이니까.
"누가 뭐래도, 우리는 남매고, 나는, 오빠 동생……, 하수연이잖아."
기어코 참아왔던 울음이 터진다. 수창은 제 손을 꼭 잡은 채 엉엉 우는 수연의 동그란 가마를 내려다보다, 이내 천장에 시선을 둔다. 흐릿해지는 시야와 더불어 수연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그렇게 오래도록 수연은 울음을 그치지 못했고, 수창은 고개를 숙이지 못했다.
----------------------
"오빠, 나 준비 다 했어."
소파에 앉아 책을 읽던 수창의 고개가 돌아간다. 드르륵, 드륵. 휠체어 바퀴가 마룻바닥에 부딪혀 나는 소리가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다. 수창은 읽고 있던 책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채 몸을 일으킨다. 성큼성큼 걸어온 수창이 휠체어 앞에 무릎을 굽혀 앉는다. 수연의 옷차림을 훑ㅇ던 수창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왜!? 이상해!? 검은색은 학교 코트밖에 없어서─"
수연이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제 차림을 살핀다. 수창은 옅게 고개를 젓는다.
"아냐, 깔끔하게 잘 입었어. 그나저나, 음……, 이럴 때 입을 옷이 없구나. 몰랐네. 몸 좀 나으면 옷 보러 갈까? 마침 겨울옷도 사야─"
"싫어."
대번에 돌아오는 거절에 수창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
수연은 두 눈만 데굴데굴 굴리며 딴청을 피운다. 잠시간 머뭇거리던 수연이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입을 일 없었으면 좋겠어서."
그리곤 무릎 위에 포갠 손을 꼬물거리며 입을 삐쭉, 내민다. 입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동생의 입장에서는 거진 난생처음 겪는 일이니, 어려울 수 있겠다 싶다. 저 역시 처음으로 검은 양복을 입었던 날에는 수연과 같은 생각을 했었다. 입을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다시는, 입고 싶지 않다고. 어느새 가라앉은 분위기 때문인지 수연이 흘끗흘끗 수창의 눈치를 본다. 수창은 손을 뻗어 수연의 귀밑머리를 톡톡 두드린다.
"그래도 하나쯤은 있는 게 좋아. 이럴 때 아니더라도, 격식 있는 자리에는 필요해."
"격식 있는 자리가 언젠데!?"
"음, 예를 들면 회사 면접이나, 나중에 네가 집에 결혼할 사람 데려올 때?"
"뭐래, 나 아직 고등학생이거든?! 너무 앞서 나간 거 아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말이. 그리고 참고로 결혼할 사람, 나중에라도 데려오지 마라. 문 안 열어준다."
갑작스레 먼 미래까지 거론하며 으름장을 놓는 수창때문에 기가 막힐 지경이 된 수연이 입을 떡 벌린다. 그런 수연을 향해 얄궂게 웃어 보인 수창이 몸을 일으킨다.
"어쨌든, 코트는 새로 사자. 이제 곧 겨울이잖아."
"됐어.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무슨."
"……야, 꼭 그렇게 이 가녀린 마음에 상처 입혀야겠냐?"
그리고 나 그렇게 못 벌지는 않는데. 떨떠름하게 답하는 것을 보며 수연이 코웃음을 친다. 그리고는 다치지 않은 발을 뻗어 수창의 정강이를 콕콕 찌른다.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그리고 살 거면 오빠 거부터 사. 추위도 많이 타는 게."
"나는 필요 없어. 더 추워지기 전에 네 옷부터─"
"아아아아─ 안 들려! 그리고 늦겠어. 이제 그만 가자."
명백히 말을 돌리는 태도를 보며 수창이 헛웃음을 친다. 언제 이렇게 커가지고, 따박따박 말대꾸하고. 지 오빠 이겨먹으려고 들고. 그런 수창의 생각을 알 리 없는 수연은 턱을 치켜든 채, '뭐해? 안 가?' 하는 것이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은 수창은 수연의 뒤편으로 가 휠체어 손잡이를 움켜쥔다.
"그래, 가자, 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마마."
"그래, 후하게 모셔라."
"얼씨구?"
"뭐? 마마라며. 그럼 오빠는 노비 아니야?"
"얼씨구우?"
드르륵. 휠체어를 밀며 수창이 말꼬리를 늘인다. 수연은 히히 웃으며 손으로 입가를 가린다. 그나저나 장례식장은, 대전, 이랬지? 응. 대전. 수연아, 진짜 가도 괜찮겠어? ……응. 나 가고 싶어. 그래, 가자. 몇 마디를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현관 앞이다. 수창이 팔을 뻗어 문을 열어젖힌다. 동시에 쏟아지는 빛살에 눈이 부셔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거의 반사적으로 손으로 수연의 머리 위를 가리며 수창이 두 눈을 깜박인다. 햇살은 둘을 넘어 집안 곳곳에 스며들고, 눈부신 빛살에 익숙해진 눈이 점점 제 시야를 되찾는다. 드르륵. 수창이 다시 휠체어를 밀어젖힌다. 드르륵, 드륵. 달칵.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만연했던 가을 끝의 햇볕이 순식간에 종적을 감춘다.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