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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한도윤

트루엔딩 후 2년 뒤, 한도윤의 이야기

​w. 이뮤

* 트위터에 언급 시 제목으로 인해 계정이 잠길 수 있습니다.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한도윤은 그해의 끝자락에 퇴원했다.
올 때는 가을이었지만 지금은 완연한 겨울이었다. 병원의 자동문 너머로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몸을 훑었다. 패딩을 걸친 사람들 사이로 한도윤은 가죽 재킷을 목끝까지 여몄다. 걸을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희뿌옇게 나타났다 사라졌다.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일부러 편의점에서 마스크를 한 장 샀다. 그대로 인파 속에 섞여 전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버스가 오지 못하는 골목을 걸었다. 가로등이 점멸하는 한밤중에야 한도윤은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긴 시간이었다. 동시에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보이는 건 먼지가 희뿌옇게 앉은 베이스 가방이었다. 본선에선 협찬을 받았기 때문에 저 베이스를 쓸 일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처음 산 베이스는 거의 5년 동안 한도윤과 함께였다. 그는 마스커레이드를 생각했다. 신승연의 말대로 애저녁에 깨진 밴드를 생각했다. 병문안을 온 멤버들에게 더는 같이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유태희는 울었고 김주용은 매달렸고 황익선은 멱살을 잡았고 허우석은 저 배신자 새끼 저럴 줄 알았다고 혀를 찼다. 앞으로 무얼 할 거냐는 말에는 말문을 흐렸다. 모르겠어, 음악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고 무대에 다시 오르지 않을 수도 있겠지. 사실 지금은 쉬고 싶어. 하지만 다시 베이스를 잡는다고 해도 마스커레이드는 아닐 거야.
그동안 즐거웠어. 미안해. 여기까지 와준 모두에게 고마워. 계속, 연락할게. 간호사 몇 명이 달려와 병실에서 일어나는 때아닌 몸싸움을 제지할 때까지 한도윤은 어떤 반격도 하지 않았다. 기껏 봉합한 상처가 다시 뜯어졌고 폭언은 마음속 깊이 박혔다. 한도윤은 흩어지는 말들이 공허하지 않기를 바랐다.

한도윤은 무대에 서지 않았다. 다시 무대로 오르기엔 염치가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길을 찾기엔 아는 게 없었다. 베이스 과외 모집 공고를 붙였다.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왜 데뷔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무대가 무너질까 두렵다고 일축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착하고 무심한 사람들은 그 이상 물어봐주지 않았다. 한도윤으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그걸로 끝난다면 괜찮은 결말이 될 뻔했다.
베리드 스타즈 시즌 5는 전작만큼의 흥행을 끌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도윤은 매 방송마다 꼬박꼬박 챙겨보았다. 수많은 사람이 꿈을 가지고 오디션에 나왔다. 한도윤은 그들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비춰보곤 했다. 유명한 가수의 곡이 미션으로 나오면 저도 모르게 어떻게 커버할지 궁리했다. 더는 참가자도 아니면서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고 베이스를 튕기는 상상을 했다. 직접 리메이크한 곡을 들고 무대에 서는 자신을 상상했다. 가슴이 뛰었다. 화려한 세팅, 스포트라이트, 스피커를 찢는 음악, 열광하는 사람들. 한도윤이 동경하고 열망하며 외면하는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
시즌 5의 우승자 민주영의 세탁기 광고가 공중파 TV에 나오던 날, 한도윤은 시즌 6의 참가 페이지를 모니터에 띄워놓곤 한참을 고민했다. 배신자의 귀환, 여러모로 화제성은 충분할 터였다. 그런 일을 저질러놓고서도 뻔뻔하게 다시 무대에 오르고 싶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랬다. 음악이 좋았다. 자신을 주목하는 시선이 좋았다. 노래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한도윤이라는 사람을 좋아해 주는 수많은 사람이, 불행히도 좋았다. 한도윤은 함정인 줄 알고도 걸어 들어가는 심정으로 시즌 6의 예선 일정을 오선지 뒷면에 적었다. 찌든 때 얼룩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민주영이 부르는 CM송이 서늘한 단칸방을 맴돌았다.

베리드 스타즈 시즌 6의 예선 일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두 달 미루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코로나19가 되는 날에 두 달 더 미루어졌고, 한 달 뒤 사실상의 취소 공지가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한도윤은 모니터 한쪽에 붙여둔 오선지를 분리수거함에 넣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대면 대신 화상 강의를 원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늘었지만, 음악을 가르치는 이상 그것도 녹록지 않았다. 기계에 익숙치 않은 한도윤에게 화상 강의는 고역이었다. 2년 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쓰던 마스크는 생활필수품이 되었고 공원 버스킹은 먼 옛날 일이 되었다. 과외 벌이는 갈수록 시원찮아졌다. 한도윤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리고 사태가 터졌다.
한도윤의 과외생 하나가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가족 모임이라고 일가친척 모두 모인 것이 화근이었다. 한도윤은 밀접 접촉자로 분류되어 보건소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는 음성이지만 2주간 자가격리를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일일이 양해 전화를 돌렸고 편의점에선 해고당했다. 마지막 전화까지 돌린 후 한도윤은 한숨을 쉬며 빈백에 몸을 기댔다. 자가격리 앱이 깔린 스마트폰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하여 붕괴 사고 이후 꼭 이 년 만에, 한도윤은 다시 갇히게 되었다. 누굴 원망할 겨를도 없었다.

한도윤은 빈백에 누워 멍하니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무대가 무너진 지 꼭 이 년째 되는 날이다. 붕괴 사고로 갇힌 이 년 전과 코로나바이러스로 갇힌 지금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동시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도윤은 그때 자신이 무얼 했는지 막연히 떠올려 보았다. 사람들을 찾고, 페이터를 확인하고, 안전한 장소를 위해 무대를 둘러봤고, 혼란에 빠진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같이 갇힌 사람도 없었고 페이터는 그 사건 이후로 하지 않은 지 오래였다. 액정에 금이 간 스마트워치는 협찬사에서 그냥 주었지만 건드려보지 않은 지 오래였다. 물리적으로 온전히 혼자가 된 지금, 한도윤은 오랜만에 그 스마트워치를 꺼내 들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지 고민했다. 녹음, 페이터, 자동쓰기…….
그리고 전화.
한도윤은 전화를 하기로 했다. 그때처럼.

-

“도윤이니?”
“어, 네. 누나. 저예요.”
바쁜 줄 알았던 민주영은 의외로 일찍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에 반가운 기색이 묻어났다.
“진짜 도윤이네. 목소리 되게 오랜만에 듣는다.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그냥 별일 없는지 궁금해서요.”
수화기 너머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통화하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네. 도윤이 넌 어떻게 지냈어?”
“저야 뭐, 그럭저럭 지내죠. 자가격리하느라 어디 나가지도 못해요.”
“자가격리? 너 괜찮아?”
민주영의 걱정에 한도윤은 그간의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음성이라니 다행이네. 나도 몇 번 검사 받았는데 다 음성 떴거든. 이런 시국일수록 건강이 중요하지.”
“네, 건강한 게 최고죠. 누나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원래 공연 스케줄 있었는데 취소돼서, 그냥 집에 있어. 그러고 보니 나도 너랑 같은 신세네.”
“누나는 그래도 어디 나갈 수 있잖아요. 전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해요.”
“하긴, 그런가?”
민주영이 머쓱하게 웃었다.
베리드 스타즈 시즌 5의 최종 우승자 민주영은 5천만 원 상당의 상금과 함께 기획사와 계약을 맺고 정식 데뷔했다. 곧이어 앨범이 발매되고 민주영은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그 사건 이후로 한도윤은 민주영에 대한 평가를 굳이 찾아보지 않았지만 노래가 좋다는 평은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베스타를 시청하지 않은 사람들도 민주영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역경과 고난을 딛고 다시 한번 떠오르는 신예. 한도윤은 그게 좋으면서도 내심 부러웠다.
“그러고 보니 너, 밴드는 어떻게 됐어?”
“예?”
“전에 했던 밴드 있잖아, 마카로프였나…….”
“……마스커레이드요.”
“알아, 농담이야.”
농담 아닌 것 같은데, 한도윤은 마른침을 삼켰다.
“……재결합 안 했어요. 그냥 그렇게 해체했고…… 지금은 다른 일 하고 있어요.”
“연락은 하고 있어?”
“아니요, ……아직.”
수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연락, 해야 해.”
“알고 있어요. 그런데…… 역시 애들 볼 면목이 없다 보니 차일피일 미뤄지더라고요.”
“…….”
“전에, 누나가 전 멤버들과 몇 년째 연락하지 않았다고 할 때…… 처음에는 놀랐어요. 그래도 가족같이 지냈던 사람들인데, 어떻게 그러나, 하고.”
한도윤은 병원에서 일어났던 몸싸움을 생각했다. 배신감을 쏟아내던 그들을 생각했다. 뜯어진 상처와 그 안에 깊이 박힌 업보를 생각했다. 화려한 무대와 맞바꾸었던 것들.
“……그런데 지금은 그 심정, 알 것 같아요.”
“그래도 연락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야.”
민주영이 반박했다.
“나도 멤버들 등지고 무단으로 탈퇴했는걸. 다시 연락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어. 하지만…… 결국 어떻게든 해내더라고.”
“누나는 그래도 정당한 사유가 있잖아요. 전 아닌걸요.”
“……그게 정당한 사유라고 생각해?”
당연하죠. 라고 말하려던 한도윤은 입을 다물었다.
“소속사의 스폰 제안과 탈퇴는 별개의 일이야. 탈퇴한다고 하더라도 멤버들에게 알려줄 순 있었어. 그렇게 하지 않고 무작정 잠적한 건 내 잘못이야. 변명의 여지 없이.”
“하지만 부당한 요구였잖아요.”
“베이스 혼자 본선 진출시킨 베스타는 안 부당하고?”
정곡을 찔린 한도윤이 침묵하자 민주영이 말을 이었다.
“결국 그런 거야. 너나 나나 똑같아. ……그때 했던 잘못들을 똑바로 마주 보고 사과해야, 나아갈 수 있어.”
“…….”
“……미안, 괜히 말을 얹었나.”
“아니에요, 안 그래도 연락하려고 했었는걸요.”
반쯤은 진심이었고 반쯤은 거짓이었다.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대로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덮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매번 충돌했다. 전화번호는 저장하고 있었지만 통화 버튼만 물끄러미 바라보다 화면을 꺼 버리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어쩌면 자신은 아직 무너진 무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한도윤은 분리수거함에 넣었던 오선지를 떠올렸다.
“그래, 연락하는 건 네 일이니까. ……너무 부담 갖진 말고.”
“네,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한도윤은 마치 눈앞에 민주영이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자가격리 잘 하고, 코로나 조심하고.”
“누나도 조심하세요.”
“그래, 격리 끝나면 인하랑 언제 한 번 보자.”
“네.”
통화 종료음이 들린 뒤에야 한도윤은 스마트폰을 얼굴에서 뗐다. 쥐고 있던 휴대폰은 손난로처럼 따뜻했다.

 

-

“한도윤?”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뚫고 나왔다. 한도윤은 반사적으로 수화기를 귀에서 뗐다.
“세상에, 이게 얼마 만이야? 나 너 죽은 줄 알았다고!”
“……안 죽었으니까 진정해. 설마 저승에서 전화를 걸었을까.”
“하긴, 네 얼굴 보면 저승사자도 기겁해서 달아날 텐데 말이지.”
“……그 정도까진 아니야.”
한도윤은 부쩍 자란 뒷머리를 멋쩍게 긁었다. 손가락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긴 머리카락은 2년 전과 같았고, 또 아주 달랐다.
“그래서 왜 전화했어? 결혼 보험 다단계 셋 중에 하나 골라.”
“셋 다 아니고…… 그냥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술 마셨어?”
“어차피 못 마셔. 오늘부터 자가격리라서.”
오인하가 자가격리라고? 라고 놀라기 전에 한도윤은 짧게 그간의 근황을 설명했다. 수화기 너머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염병할 코로나.”
“넌 괜찮아?”
“난 괜찮은데 내 직장이 안 괜찮다.”
“……잘렸어?”
“차라리 잘리면 다른 데라도 찾지.”
오인하가 꿍얼거렸다.
무대를 공부하고 싶다던 오인하는 1년 전 한 소극장의 무대 연출 담당으로 취직했다. 시기가 좋지 않았다. 곧 전염병이 불어닥쳤고 공연계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직격탄을 맞았다. 관객이 절반 아래로 감소했고 그마저도 열리지 않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공연장 전체를 소독하는 일도 있었다. 그날 공연은 모두 취소되었다.
“그리고 위약금 엄청나게 물어줬어.”
“……힘들었겠네.”
“뭐 내가 힘든 건 아니니까. 이런 상황에선 모두가 힘들지.”
어쩔 수 없잖아. 오인하는 의외로 담담했다.
“그래도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
“너도.”
오인하는 그 이후로 말이 없었고 한도윤은 어떤 말을 전해야 할지 고민했다. 수화기에선 간헐적으로 지직대는 소리만이 들렸다.

“아 맞아. 너한테 전화 와서 생각난 건데.”
“응.”
“그…….”
답지 않게 뜸 들이는 소리가 길었다. 작은 자취방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이규혁, 교도소 어딘지 알아?”
“……어?”
뜻밖의 말에 한도윤은 숨을 삼켰다.
“아니, 너라면 알고 있지 않나, 하고…….”
“……그건 왜?”
“왜냐니, 나도 한 번 봐야 할 거 아냐…….”
오인하의 자신감 넘치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졌다.
“솔직히 아직도 안 믿기고, 이게 다 나쁜 꿈이었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사람 죽인 건 사실…… 이라고 하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아직 못 정했는데…… 그래도, 얼굴 보면 좀 갈피라도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영이 언니도 너랑도 연락했는데 걔는 그때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너무 무리하지 않아도 돼.”
“……의외네, 넌 이규혁 편 아니었어?”
오인하는 더는 이규혁을 규, 라는 애칭 섞인 호칭으로 부르지 않는다. 한도윤은 오인하를 이해하면서도 내심 입 안이 씁쓸했다.
한도윤이 교도소 이름과 주소를 불러주자 수화기 저편에선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인철 그 새끼랑 같은 교도소면 안 가려고 했는데, 다행이네.”
“정말 괜찮겠어?”
“뭐 어떤 거?”
“범죄자 싫어하잖아, 너.”
“……그렇지.”
오인하는 떨떠름하게 말을 이었다.
“참 이상하지. 범죄자 딸년이라는 표식이 죽도록 싫어서 평생 범죄의 비읍 자만 보여도 기겁하면서 피했는데.”
“…….”
“모르겠어. 완전히 이해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나랑…… 어떤 면에선 비슷하다고 생각했어. 아버지에게 학대받고, 과거를 숨기고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기 위해 오디션에 나갔고……. 어쩌면 동질감일지도 모르겠네. 그래서 더 싫은 건 사실이고…… 그렇다고 살인이 용납되는 건 아니니까.”
오인하는 긴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면회 가는 게 죄는 아니잖아. 엄마도 뭐…… 그 새끼 면회 가는데.”
“그렇지.”
“그러니까.”
죄와 과거와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어렵다. 한도윤은 최대한 말을 골랐지만, 그 말이 상대에게 어떻게 전해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후로 그들은 몇 차례 더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너 영이 언니한텐 전화해 봤어?”
“안 그래도 조금 전에 전화해봤어.”
“타이밍 좋았네, 안 했으면 멱살 잡고서라도 전화하라고 했을 텐데.”
“멱살 못 잡잖아…….”
시원시원한 웃음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나왔다.
“아무튼 오랜만에 전화하니까 즐겁고 좋네. 앞으로도 연락 많이 해.”
“그래, 너도 잘 지내라.”
“쌩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한도윤은 깜빡이는 휴대폰 화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

한도윤은 이규혁의 연락처를 휴대폰에 띄워놓고는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차피 이 번호로 연락해도 이규혁은 받지 못한다. 교도소 측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19의 확산으로 당분간 직계 가족을 제외하고는 면회를 제한한다고 설명했다. 이규혁에겐 직계 가족이 없었으므로 그를 면회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허락되고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허락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어쩌면 형제를 바랐을지도 몰라. 한도윤은 이규혁의 말을 새삼스럽게 곱씹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도윤아?”
익숙한 목소리. 한도윤은 숨을 삼켰다.
“형.”
“맞구나, 오랜만이네.”
“……형.”
이규혁으로부터 전화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도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그 어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전화했어?”
“너한테 전화 온 거 보고 간수님이 연락해 보라고 하셨어.”
“교도소 안에서 연락돼?”
“공중전화가 있으니까. 한 달에 1번 정도는 연락할 수 있어.”
“연락할 수 있으면서 왜 안 했어. 나한테라도 하지.”
“……어떻게 그래.”
너는 네 인생을 살아야지. 이규혁은 그저 담담했다.

“그래서 형, 요즘은 어떻게 지내?”
“잘 지내고 있어, 걱정해줘서 고마워.”
민주영이나 오인하가 잘 지낸다고 말하면 한도윤은 그대로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규혁의 입에서 나오는 잘 지낸다는 말은 도통 신뢰가 가지 않았다. 한도윤은 뭉실뭉실 떠오르는 수많은 걱정거리를 그저 목구멍 속으로 삼켰다. 물어본다고 솔직하게 답해줄 것 같지도 않았다.
“원래 면회 오려고 했는데, 지금 자가격리 중이라 당분간은 못 오겠네.”
“자가격리? 도윤아, 너 설마…….”
“……아니야…….”
한도윤은 그간의 상황을 짧게 설명했다.
“아니라니 다행이긴 한데…… 역시 조금 더 조심하는 게 좋겠어.”
“형이야말로 조심해야지. 교도소는 사회적 거리두기도 안 되면서.”
“……그런가.”
이규혁이 머쓱하게 웃었다.
“그래도 음악을 계속한다니 다행이네.”
“평생 해온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무대에 서는 것도 아닌데, 뭐.”
“너라도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어. 난…….”
“‘너라도’라니, 형도 출소하면 할 수 있어, 음악.”
“…….”
“8년 남았잖아, 그때가 지나면…….”
“……도윤아.”
이규혁이 한도윤의 말을 끊었다.
“넌 나한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형.”
“난 사람을 죽였어.”
갑작스러운 고백에 한도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사람도 아니고 세 사람이야. 세 사람의 인생을 빼앗은 대가를 고작 내가 감옥에서 10년 지내는 거로 무마할 수 있을까? 도윤아, 난 내가 무기징역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어, 아니, 그걸로도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한도윤은 이규혁의 재판을 생각했다. 자수와 심신미약 등으로 이런저런 감형을 받은 그는 최종 선고에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연쇄살인범치고는 너무 가벼운 형량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손절했다던 이규혁의 가문이 손을 썼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도윤은 유독 어두운 표정이었던 재판장의 이규혁을 떠올렸다. 자신의 재판에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죄수 이규혁은 나무랄 데 없이 평범하고 성실하게 교도소의 삶에 적응했다. 타인과의 관계를 기피한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다. 가히 모범수라 불릴 만했으나 일각에서는 그게 오히려 소름 끼친다는 반응도 있었다. 사람을 죽여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 사이코패스, 혹은 한순간의 실수로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 불쌍한 청년. 이규혁의 뒷이야기는 여러 방송국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몇 차례 다루어지다 곧 시들해졌다. 무너진 무대가 철거되듯 사람들은 곧 관심을 거두었다.
한도윤은 이 이야기들을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규혁에 대해 생각 없이 왈가왈부하는 걸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이규혁이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고, 그에게 정보를 물어다 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정보 제공엔 만족하셨습니까, 한도윤님?
수화기 너머로 능글맞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만족하셨다면 1번, 만족하지 않으셨다면 2번, 다시 듣기를 원하신다면 별표를…….
-……고마워요, 수창이 형.
-뭘 인사까지. 나중에 계좌로 비용 씨게 받을 테니까 그렇게 알라고.
-이거 유료 서비스였어요?
-에헤이, 나는 농담도 못 하냐? 사서는 모든 이용자의 평등한 정보접근을 지향한다는 말 못 들어봤어?
-저는 대학 안 나와서 모르겠는데요.
-내가 말을 말지.
하수창은 앓는 소리를 냈다. 그것도 벌써 반년 전 일이다.

“예전에는 내가 살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 죽어 마땅한 죄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난 지금 살아 있잖아.”
네가 살려준 목숨으로. 한도윤은 꼭 2년 전의 그날을 떠올렸다,
“도윤아, 난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물기 어린 목소리에 한도윤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이규혁의 고민은 한도윤의 고민이기도 했다. 살인자로 사는 것과 배신자로 사는 것. 과거를 외면하지 않고 미래를 보는 것. 과오를 직시하는 동시에…… 그 과오에 파묻히지 않는 것.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한도윤은 솔직하게 시인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르겠어. 어쩌면 평생 고민하면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겠네.”
“…….”
“하지만 우린 살아 있잖아.”
어쩌면 이 말이 기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도윤은 입을 열었다.
“살아 있는 동안 고민하고 부딪히면서 살면 되는 거야. 어떻게 속죄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러다 보면 아마…… 답이 나올 수도 있겠지.”
죄인에게 고하는 심정으로 생각을 토했다.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면할 건 아니잖아. 끌어안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거야. ……살인자로.”
그리고 배신자로.
이것이 한도윤이 내린 답이었다. 사실 답이라기보다는 답으로 가는 길에 가까울 것이다. 수화기 너머에선 한참이고 말이 없었다. 한도윤도, 더는 말할 건덕지가 생각나지 않았다.
-잠시 후 통화가 종료됩니다.
이질적인 기계 음성에 한도윤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상대방도 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도윤아.”
“응.”
“고마워, 날 구해줘서.”
한도윤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규혁은 더는 나를 살리지 말았어야 했어, 따위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생존당한 그는 이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긍정하고 속죄할 방법을 찾는다. 긴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한도윤은 그가 자신만의 길을 잘 찾아내리라고 믿었다.
“고맙긴, 자가격리 끝나면 면회 갈게.”
“굳이 안 와도…….”
“내가 원해서, 내 의지로 가는 거야. 목욕재계나 잘해 둬.”
“……하하.”
이규혁이 머쓱하게 웃었다. 한도윤이 듣는 아주 오랜만의 웃음소리였다.
“그때까지 잘 있어.”
“그래, 도윤이 너도.”
그들은 다음을 기약했고 전화는 끊겼다. 한도윤은 아주 오랜만에 주소록을 열고는 모르는 번호를 저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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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도윤은 스마트폰 주소록을 열고 저장된 번호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주소록 맨 위쪽에는 아직도 마스커레이드 시절 멤버들의 이름이 자리하고 있었다. 밴드가 흐지부지 해체된 지 2년이 지났지만 한도윤은 아직 그 이름을 지우지 못했다. 마스커레이드는 한도윤의 과거였고 끝맺지 못한 현재였다.
연락해볼 시도를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자신에게 향할 날것의 감정들이 두려웠다. 사고 현장에서의 상처는 아물었지만, 그가 밴드를 배신했고 나머지 멤버들이 실망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혼자 미안해한다고 해결되는 일은 없지만, 그들이 자신을 너무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없는 건 아니었다. 스스로도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말 사과하고 싶은 것일까, 다시 전 멤버들에게 인정받기를 바라는 걸까, 아니면…… 그저 마음이 편해지자고 하는 일일까.
민주영은 시청률을 위해 밴드를 와해하고 베이시스트를 단독으로 본선 진출시킨 베스타가 부당하다고 했다. 한도윤은 그게 어느 정도 사실이 아님을 알았다. 재난은 역병처럼 닥쳐오지만 동시에 이전부터 문제였던 사회의 가장 아픈 부분을 드러내기도 한다. 신승연의 제안은 일종의 재난이었지만, 한도윤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도 마스커레이드가 애저녁에 깨진 밴드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였다. 마치 무대의 붕괴는 재난이지만 부실 공사로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처럼. 뭐 마이크로 크기의 바이러스도 사회를 송두리째 배신하는 마당에 한 사람이 5인 밴드를 배신해봤자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한도윤에겐 중요했고 그건 그가 배신자라는 오명을 그렇게 신경 쓰는 이유이기도 했다.
한도윤은 민주영의 조언을 떠올렸다. 오인하의 결심을 떠올렸다. 이규혁의 앞에서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의 잘못을 직시하고, 고민하고, 부딪혀 보는 것. 과거를 외면하지 않는 것. ……만나 보는 것.
시계는 아직 오후 8시가 채 못 된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전화해도 민폐가 되진 않으려나 모르겠다. 한도윤은 주소록을 맨 위쪽으로 올리고는 심호흡을 했다. 곧이어 짧은 연결음이 들리고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는 2년 전과 아주 비슷했고, 또 달랐다.
그리하여 배신자 한도윤은, 가장 해묵은 과오와 마주하기로 했다.
“어, 주용아.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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